장성경찰서 청문감사계장 경감 김성우

인권을 글자 그대로 풀어쓰면 인간(人)의 권리(權)라는 뜻이 됩니다.

간단하죠. 그러나 사실상 인권을 정의하는 일은 항상 그리 간단한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이나 ‘권리’라는 개념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늘 다르게 정의되었기 때문입니다.

먼 예를 들 것도 없이 가정폭력이 심각한 범죄행위로 인식되지 않던 몇 년 전만 해도 부부싸움 신고 출동을 나가보면 “집안일이다, 내 자식 내가 때리는데 웬 간섭이냐?”며 도리어 경찰관들에게 호통을 치는 사람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낳은 자식이니 자기 마음대로 폭력을 행사해도 괜찮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일반적으로 용인되던 사회에서 그 ‘자식(어린이)’은 과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받는 인권의 주체였을까요?

아이에 대한 체벌을 훈육의 일종으로 여기는 사회에서는 법에서 아동의 권리를 보장한다고 해도 처벌이나 강압적인 훈육 측면에서는 현실적인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법과 현실의 괴리인 셈이죠.

이와 같은 사례들은 역사적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신분질서가 명확했던 중세봉건의 농노제도, 남녀가 유별하다는 관념이 일반적이었던 조선사회의 여성, 일제 강점기를 살던 우리 조상들, 나치 치하에 곤혹을 치른 유태인, 개척시대 미국의 흑인노예, 아파르트헤이트(흑인 분리주의) 정책이 지배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국민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굴곡마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살아 왔습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 사례를 보면 정치적인 이유로 이루어진 고의적인 차별이나 인종청소와 같은 극단적인 사례도 많지만 그 중에는 사회공동체의 인식에 기인한 사례도 꽤 많습니다.

인간이지만 동 시대의 다수로부터 인간이 아닌 존재로 평가되었거나 인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경험들을 되돌아보며 ‘인권’을 그저 인간의 권리라고 사전적으로 풀어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자칫하면 ‘우리들끼리의 권리’, ‘그들끼리의 권리’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이 경우 인권에 대한 정의는 필요에 따라 혹은, 취향에 따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인간을 배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헌법에 권리를 규정한 조항들을 보면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헙법 37조 ①항)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지되지 아니한다. (37조 ②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이렇게 권리의 향유에 있어 특정한 성향이나 취향이나 조건이 결부되어 차별이나 배제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권’을 정의할 때 그저 ‘사람의 권리’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권리’라고 정의해야 할 것입니다.

(장성경찰서 청문감사계장 경감 김성우)

저작권자 © 장성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