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중섭 장성시민연대 편집국장

“남의 발목은 잡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왜 앞으로 가려는 사람을 옆으로 돌려놓는가?”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이 어록에 꽂힌 사람들이 있다.

한 사람은 이 회장의 어록이 마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양, 이 말에 꽂혀 장성군의 역점 사업인 옐로우시티, 황룡강, 장성호 개발사업을 두고 혜안, 금자탑 운운하며 ‘용비어천가’를 넘어 ‘황룡비어천가’를 불렀고, ‘흠집 내는 자 = 뛰는 사람 발목 잡는 사람’인 듯 묘사했다.

또 한 사람은 이에 고무됐던지 군의회에서 행한 시정연설에서 이 말을 인용하면서 화합과 상생을 언급했다. 집행부 수장이 군의원들 앞에서, 또 군민들에게 전하는 연설문 치고는 심히 부적절한 비유이며 모순된 언행이 아닐 수 없다.

이 말은 참여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의회의 견제와 감시 기능을 무시하고 아집과 독선만이 가득 찬 위험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화합과 상생을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한편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잊지 못할 세월호. 세월호에 탔던 수 백명의 어린 학생들은 “가만히 있어라”라는 말을 들었고, 이 말을 믿었다.

고인을 욕보이고 싶지는 않지만, 이 회장은 성공한 기업인 중 한 사람일 뿐 정치인이 아니다. 기업의 총수로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계열사 사장단과 임원들을 향해 끊임없이 ‘발상의 전환과 의식의 개혁’을 요구했던 건 사실이다. 이를 대변해 주는 가장 대표적인 말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이다.

기업 경영 측면에서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과 세계경제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앞서나가기 위해서는 그룹 내 샐러리맨들의 타성에 젖어있는 사고의 개혁이 절실했다. 임원들을 옥죄고 다그쳐서라도 개혁!, 또 개혁을 부르짖어야만 했으니...

세계 초일류 기업 ‘삼성 SAMSUNG’을 일구어낸 것과 기업가로서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있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그렇다고 이 회장은 성자(聖子) 같은 삶을 살지도 않았고, 성자의 반열에도 오르지 않는다. 안티 삼성, 안티 이건희도 많다.

연 매출 400조원이라는 삼성의 화려한 겉모습 이면에는 이 땅의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과 희생이 녹아있을까? 이를 안다면 차마 이 회장의 어록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것처럼 아무 곳에서나 인용하지는 못하리라.

이 말을 이건희 회장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한 말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의 어록은 주로 사장단 회의에서의 발언과 삼성 가족들에게 전하는 총수의 신년사에서 인용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개혁’을 말하면서 ‘정도(正道) 경영’을 강조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어록 중 하나 “비정도(非正道) 1등보다 정도(正道) 5등이 낫다”는 말에서는 ‘정도(正道) 경영’ 의지가 더욱 확실하게 드러난다. “왜 앞으로 가려는 사람을 옆으로 돌려놓는가?”라고 나무라듯 반문하거나, “발목 잡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정도(正道)를 전제로 하는 기업경영을 말했으리라.

그러나 민주 시민사회에서는 이 말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공동체의 리더가 지향하는 길을 모든 시민들이 정도(正道)라 여기는 공감을 이끌어 내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 길이 위험이 따르고, 공동체에 해를 끼치거나, 공멸로 가는 길이라면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을 시민들이 어디 있겠는가?

리더가 “도로 끝”, “앞에 지뢰밭”, “앞에 낭떠러지”라는 표지판을 못 보거나, 무시하고 비정도(非正道)를 향해 뛰어 간다면 백 번이라도 발목을 잡아 옆길로 돌아가기를 조언해야 할 일이다.

이 회장의 어록에 꽂힌 분들께 한 말씀 올리자면, 당신들이 개인의 영달과 부를 위해 뛰어 간다면 정도(正道)이든 비정도(非正道)이든 내 알 바 아니오. 가만히 있겠소. 그러나 시민들의 삶과 미래가 걸려있는 길이라면, 시민들의 뜻에 반하거나, 독선과 오기와 아집으로 꽉 찬 일방통행식 행정이라면 백 번, 천 번이라도 발목을 잡겠소. 그렇게 발목 잡을 시민들은 백 명, 천 명이라도 더 있을 것입니다.

저작권자 © 장성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